나는 예전에 “독해력”이라는 말을 들으면 문장을 잘 이해하는 능력이라고만 생각했다.
단어를 모르면 사전을 찾고, 문장이 길면 끊어 읽고, 문단을 요약하고. 틀린 생각은 아니다. 학교에서 배운 읽기는 대체로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 어른이 마주치는 문서들은 그것만으로 잘 넘어가지 않는다. 약관, 공고, 계약서, 정책 안내, 보고서.
왜 그럴까. 한참 뒤에야 이유를 알았다.
이런 문서들은 “읽히는 글”이 아니라 「작동하는 글」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설득하고, 제한하고, 책임을 나누고, 돈을 움직인다. 읽고 나서 감상이 남는 글이 아니라, 읽는 순간 내 권리와 의무가 정해지는 글이다.
그래서 이런 문서를 읽는다는 건 문장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문서가 작동하는 방식을 보는 일이다. 그 작동 방식의 첫 번째가 구조다.
한 줄 답: 읽고도 찝찝한 느낌이 남을 때, 대개는 이해를 못 한 게 아니라 구조를 못 본 것입니다. 글을 주장·근거·전제·예시·예외 다섯으로 나눠 보면 어떤 문장이 결론이고 어떤 문장이 장식인지 갈립니다. 요약은 무슨 말인지 알려주지만, 구조는 그래서 어떻게 할지를 알려줍니다.
이해가 안 되는 게 내 탓만은 아니다
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짚고 갈 게 있다.
문서가 어려울 때 우리는 대개 자기 탓을 한다. “내가 법을 몰라서”, “내가 꼼꼼하지 못해서”. 그런데 국가는 이 문제를 개인 능력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국어기본법 제14조는 이렇게 정한다. 공공기관은 공문서를 “일반 국민이 알기 쉬운 용어와 문장으로 써야” 한다고. 그리고 2021년 개정으로 한 항이 더 붙었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이를 매년 평가하고 그 결과를 공개해야 한다.
민간 쪽도 있다.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 제3조 제1항은 사업자에게 이렇게 요구한다. 한글로 작성할 것, 표준화·체계화된 용어를 쓸 것, 그리고 약관의 중요한 내용을 부호·색채·굵고 큰 문자 등으로 명확하게 표시할 것.
법이 여기까지 정해뒀다는 건 무슨 뜻일까. 적어도 문서의 난해함이 개인의 부주의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개인이 노력해서 풀 문제였다면 매년 평가하도록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어려운 문서 앞에서 위축될 필요는 없다. 다만 그 문서가 개선될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으니, 읽는 쪽에서 쓸 도구가 필요하다.
구조를 못 보면 생기는 일
읽고 나서 이상하게 찝찝할 때가 있다. 말은 되는 것 같은데 믿어도 되는지 모르겠고, 결론은 있는 것 같은데 근거가 허전하고, 다 읽었는데 붙잡을 문장이 없다.
그럴 때 우리는 “내가 이해를 못 했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해 문제가 아니라 구조를 못 본 경우가 많다.
구조를 못 보면 이런 일이 생긴다.
- 주장인지 설명인지 구분이 안 된다
- 근거인지 예시인지 섞여 보인다
- 중요한 문장과 장식 문장이 같은 무게로 느껴진다
- 그래서 요약은 되는데 판단은 안 된다
마지막 줄이 핵심이다. 요약과 판단은 다른 일이다. AI 요약이 늘 같은 것을 지우는 이유도 여기 있다. 요약은 내용을 남기고 관계를 지운다.
글은 대개 다섯 개로 이루어져 있다
문서는 형태가 달라도 안에 들어 있는 요소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 요소 | 하는 말 | 확인할 것 |
|---|---|---|
| 주장 | “결론은 이거다” | 한 줄로 써지는가 |
| 근거 | “왜냐하면 이렇다” | 주장을 직접 받치는가 |
| 전제 | (말하지 않음) | 무엇을 당연하게 깔고 있나 |
| 예시 | “예를 들면 이렇다” | 대표인가 하나의 장면인가 |
| 예외 | “단, …” | 결론을 어떻게 좁히나 |
이 다섯을 갈라내는 질문은 하나로 시작한다.
“그래서 이 글이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뭐야?”
이 질문을 던지면 문장들이 갑자기 모양이 달라 보이기 시작한다. 어떤 문장은 결론이고, 어떤 문장은 결론을 밀기 위한 장치고, 어떤 문장은 그냥 분위기다. 그걸 구분하는 순간 글이 나를 흔들기보다 내 앞에 놓이게 된다.
주장과 설명을 구분하지 못하면 늘 흔들린다
여기서 우리가 자주 하는 실수가 하나 있다. 설명을 주장처럼 받아들이는 것이다.
설명은 정보를 준다. 하지만 “그래서 무엇을 믿고 무엇을 할지”를 정하게 하지는 않는다. 설명을 많이 들으면 똑똑해진 느낌은 나는데, 결정은 오히려 어려워질 때가 많다.
반대로 주장은 결론을 요구한다. 동의하거나, 반박하거나, 보류하거나. 주장 앞에서는 결국 내가 서야 한다.
읽고 나서 “좋은 정보였다”는 느낌만 남는다면, 그 글은 설명이었거나 내가 주장을 못 찾은 것이다. 둘 중 어느 쪽인지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읽기가 달라진다.
근거는 ‘많이’가 아니라 ‘어떻게’다
통계가 많고 사례가 많고 인용이 많은 글이 있다. 그런데 근거가 많다고 좋은 글은 아니다. 근거는 양이 아니라 구조다.
- 근거가 주장을 직접 받치고 있는가
- 근거가 사실인지, 의견인지, 해석인지 구분되는가
- 근거가 특정 상황에만 해당되는 건 아닌가
첫 번째가 특히 자주 무너진다. 주장은 A인데 근거는 B를 받치고 있는 경우가 생각보다 흔하다. 그 사이가 벌어져 있어도 문장이 매끄러우면 잘 안 보인다.
근거 자체를 구별하는 법은 따로 정리해두었다. 여기서는 근거가 어디에 걸려 있는지만 보면 된다.
전제는 가장 조용한 부분이다
전제는 대놓고 말하지 않는다. “당연히 이럴 것이다”라는 가정이 밑바닥에 깔려 있다.
- “사람은 보통 이렇게 행동한다”
- “이 정책이 더 합리적이다”
- “이 서비스는 당신에게 이롭다”
- “이 선택이 더 안전하다”
이 문장들은 글에 직접 적혀 있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적혀 있지 않은데 글 전체가 그걸 딛고 서 있다.
전제를 못 보면 글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전제를 보면 글이 흔들릴 수도 있다. 그 흔들림이 바로 생각이다.
전제는 사실이 아니라 가정이다. 그래서 전제를 보는 순간 나는 글의 주인이 된다.
예시는 친절하지만 위험하다
예시는 머릿속에 그림을 만들어준다. 그래서 친절하다.
그런데 예시는 하나의 장면을 전체처럼 보이게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예시가 나오면 한 번 더 물어야 한다. 이 예시는 정말 대표적인가. 이 예시 말고 다른 경우는 없나.
예시는 때로 근거처럼 쓰이지만, 그 자체로 충분한 근거가 되려면 대표성이 필요하다. 구조 읽기는 예시를 예시 자리로 돌려놓는다.
3분 프로토콜 — 다섯 줄
어떤 글이든 좋다. 뉴스든 공고든 약관이든. 다섯 줄만 채우면 된다.
- 주장 — 이 글의 결론 한 줄
- 근거 — 왜 그렇다고 하는가 (핵심 이유 한둘)
- 전제 — 당연하다고 깔고 가는 가정은 무엇인가
- 조건·예외 — “단 / 다만 / 제외 / 한하여”가 결론을 어떻게 좁히는가
- 내 결론 — 나는 무엇을 믿고 무엇을 보류할 것인가
다섯 줄이 채워지면 글은 더 이상 느낌이 아니다. 판단의 재료가 된다.
그리고 4번을 적다 보면 알게 된다. 구조를 읽기 시작하면 결국 가장 아픈 곳이 드러난다는 걸. 조건과 예외다. 우리는 늘 「단, …」 뒤에서 미끄러진다.
오늘 할 수 있는 것
글 하나를 골라 첫 줄만 이렇게 써보자.
“이 글의 주장은 ____이다.”
한 문장으로 안 써진다면 그건 아직 그 글이 내 안에서 정리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것만 알아도 오늘은 성공이다.
그리고 그 한 줄을 쓰는 순간, 나는 읽는 사람이 아니라 판단하는 사람이 된다.
근거에 대하여 — 이 글은 국어기본법 제14조(공문서 등의 작성·평가)와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 제3조 제1항(작성의무)의 조문을 대조해 썼다. 공공언어 진단 사업의 개별 수치는 문서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말할 때 필요한 자료여서, 이 글에서는 옮기지 않고 「문서의 어려움이 개인 능력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는 원칙을 설명하는 범위로만 다루었다.
이 글은 thinkwith의 자체 조사·집계로 작성되었습니다. 출처: 구조 읽기 — 약관과 공고는 읽히는 글이 아니라 「작동하는 글」이다 — thinkwith
자주 묻는 질문
구조 읽기란 무엇인가요?
글을 주장·근거·전제·예시·예외 다섯 가지로 나눠 보는 읽기입니다. 요약이 무슨 말을 했는지 정리하는 일이라면, 구조 읽기는 그 말들이 서로 어떤 관계인지를 보는 일입니다. 읽고도 찝찝한 느낌이 남을 때 대개는 이해를 못 한 것이 아니라 구조를 못 본 것입니다.
왜 요약만으로는 판단이 안 되나요?
요약은 관계를 지우기 때문입니다. 어떤 문장이 결론이고 어떤 문장이 그 결론을 밀기 위한 장치인지, 어떤 문장이 그냥 분위기인지가 요약에서는 같은 무게로 눌립니다. 그래서 요약을 읽으면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그래서 어떻게 할지는 정해지지 않습니다.
작동하는 글이란 무슨 뜻인가요?
읽히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무언가를 실행시키는 것이 목적인 글이라는 뜻입니다. 약관·공고·계약서·정책 문서는 사람을 설득하고 제한하고 책임을 나누고 돈을 움직입니다. 소설이나 칼럼처럼 읽고 나서 감상이 남는 글이 아니라, 읽는 순간 내 권리와 의무가 정해지는 글입니다. 그래서 이해만으로는 부족하고 작동 방식을 봐야 합니다.
문서가 어려운 건 제 탓인가요?
전적으로 그렇지는 않습니다. 국어기본법 제14조는 공공기관이 공문서를 일반 국민이 알기 쉬운 용어와 문장으로 쓰도록 정하고 있고, 2021년 개정으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이를 매년 평가해 공개하도록 했습니다.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 제3조 제1항도 사업자에게 한글로 쓰고 표준화된 용어를 사용하며 중요한 내용은 부호·색채·굵고 큰 문자로 명확히 표시하도록 요구합니다. 법이 이렇게까지 정했다는 것은 그렇지 않은 문서가 많다는 뜻입니다.
주장과 설명은 어떻게 다른가요?
설명은 정보를 주고 주장은 결론을 요구합니다. 설명을 많이 들으면 똑똑해진 느낌은 나지만 결정은 오히려 어려워질 때가 많습니다. 반면 주장 앞에서는 동의하거나 반박하거나 보류해야 하므로 결국 내가 서야 합니다. 설명을 주장처럼 받아들이면 늘 흔들립니다.
전제는 어떻게 찾나요?
전제는 글에서 가장 조용한 부분이라 대놓고 말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이럴 것이다라는 가정이 밑바닥에 깔려 있습니다. 사람은 보통 이렇게 행동한다, 이 선택이 더 안전하다 같은 문장이 그렇습니다. 전제는 사실이 아니라 가정이므로, 그것을 찾아내는 순간 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게 됩니다.
구조 읽기를 하는 3분 절차는 무엇인가요?
다섯 줄을 채우면 됩니다. 첫째 이 글의 결론 한 줄, 둘째 왜 그렇다고 하는지 핵심 이유 한둘, 셋째 당연하다고 깔고 가는 가정, 넷째 단 이나 다만 으로 붙은 예외, 다섯째 나는 무엇을 믿고 무엇을 보류할 것인가입니다. 이 다섯 줄이 채워지면 글이 느낌이 아니라 판단의 재료가 됩니다.
오늘 당장 무엇을 하면 되나요?
글 하나를 골라 첫 줄만 이렇게 써보세요. 이 글의 주장은 무엇이다. 한 문장으로 안 써지면 그 글은 아직 내 안에서 정리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 한 줄을 쓰는 순간 읽는 사람에서 판단하는 사람으로 자리가 바뀝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