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부모 대신 AI에게 고민을 말할 때막아야 할까, 어떻게 봐야 할까

시리즈: AI와 아이


아이가 고민이 생겼을 때 누구에게 말할까. 국가가 물어봤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25년 8월부터 10월까지 전국 6,180명을 조사한 「한국인의 의식 및 가치관 조사」. 그중 13~18세 청소년 390명에게 “고민이 있을 때 누구와 상담하느냐”고 물은 결과다.

상담 대상비율
친구27.0%
어머니26.2%
상담하지 않음15.6%
AI7.3%
아버지6.5%
형제자매5.6%
선생님4.7%

출처: 문화체육관광부, 「2025년 한국인의 의식 및 가치관 조사 결과보고서」(2025년 12월 23일 발표). 13~18세 응답자 390명 기준.

AI가 아버지보다 위에 있다.

이 표를 처음 봤을 때, 나는 한참을 그 두 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나는 입시 현장에서 20년을 보냈고, AI 교육 서비스를 직접 만드는 사람이고, 그리고 한 아이의 아빠다. 그 세 가지가 한 줄의 통계 앞에서 동시에 멈췄다.

한 줄 답: AI는 아버지를 이긴 것이 아닙니다. 차이는 0.8%포인트고, 표본은 390명입니다. 순위를 다투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정말 무서운 숫자는 그 위에 있습니다 —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15.6%. 아이가 AI에게 말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아이가 어디에도 말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천천히 풀어보자.

먼저, 이 숫자를 정확하게 읽자

언론은 이 조사를 “AI가 아빠를 제쳤다”고 보도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정확한 말도 아니다. 나는 이 글에서 숫자를 부풀리지 않으려 한다. 부모의 불안을 자극해서 얻는 클릭은 이 사이트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정직하게 짚어야 할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차이는 0.8%포인트다. AI 7.3%, 아버지 6.5%. 해당 연령대 표본이 390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정도 차이로 “AI가 아버지를 앞질렀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순위가 뒤집혔다는 사실 자체보다, AI가 상담 대상 목록에 아예 올라와 있다는 것이 진짜 뉴스다. 몇 년 전만 해도 이 항목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둘째, 어머니는 26.2%로 아버지의 네 배다. 이건 AI 때문에 생긴 격차가 아니다. AI가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있던 격차다. AI는 아빠의 자리를 빼앗은 것이 아니라, 원래 비어 있던 아빠의 자리를 드러냈을 뿐이다.

셋째, 가장 큰 숫자를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친구와 어머니 다음, 3위는 AI가 아니다. “상담하지 않음” 15.6%다. AI에게 말하는 아이(7.3%)보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 아이가 두 배 이상 많다.

우리가 놀라야 할 지점은 여기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 아이는 분명히 걱정해야 한다.

다만 오해는 말자. AI에게 말하고 있다고 해서 안전한 것도 아니다. 무엇을 말하는지, AI만 찾게 되는지, 위험 신호가 있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그 이야기는 이 글 뒤에서 따로 하겠다.

우리가 싸울 상대는 AI가 아니라 침묵이다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자. 나는 이 보고서를 나이별로도 뜯어봤다. 13세와 14세 사이에 뭔가 극적인 변화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숫자가 있었다.

그런데 표에 적힌 응답자 수를 확인해보니 13세는 4명, 14세는 18명이었다. 네 명 중 세 명이면 75%다. 그런 숫자로는 아무 이야기도 할 수 없다. 그래서 쓰지 않기로 했다.

문체부 조사 [표 4-9] 연령별 사례수: 13세 4명, 14세 18명, 15세 33명, 16세 57명, 17세 119명, 18세 159명. 어린 연령대의 표본이 매우 작아 연령별 비교는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대신 확실한 것만 말하겠다. 전체 390명 기준으로, 아무에게도 상담하지 않는 아이가 15.6%다. AI에게 말하는 아이의 두 배다.

그러니 우리가 마주해야 할 상대는 AI 자체가 아니다. 그렇다고 침묵만도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이것이다 — 아이가 위험한 마음을 사람에게 연결하지 못한 채, AI 안에서만 반복하는 상태.

침묵도 위험하고, AI 안에만 갇힌 대화도 위험하다. 둘 다 사람에게 닿지 못했다는 점에서 같다.

잠깐, 언론이 자주 틀리는 숫자 하나

이 대목에서 짚고 가야 할 게 있다. 요즘 기사에 자주 등장하는 문장이다.

“청소년 34.4%가 AI에게 고민을 상담한다.”

이 문장은 부정확하다. 나는 원 보고서를 직접 열어봤다.

출처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5 10대 청소년 미디어 이용조사」(초4~고3, 2,674명)다. 이 조사에서 실제로 물은 것은 이렇다.

  • 먼저 “지난 일주일 동안 대화형·생성형 AI를 이용한 적 있나?” → 67.6%가 그렇다(초등 51.2%, 중등 69.8%, 고등 82.3%).
  • 그 다음, 이용해본 적 있다고 답한 1,806명에게만 “AI를 이용하는 이유가 뭔가?”를 복수응답으로 물었다. 여기서 “조언을 받거나 고민을 상담하는 등 소통하기 위해서”를 고른 비율이 34.4%다.

즉 34.4%의 분모는 전체 청소년이 아니라 ‘AI를 써본 청소년’이다. 전체 청소년 기준으로 단순 환산하면 약 23%가 된다. 다만 이 23%도 “실제로 고민을 털어놓은 비율”이 아니다. 복수응답으로 고른 ‘AI를 쓰는 이유’일 뿐이다. “얼마나 자주 상담하는가”를 물은 게 아니라 “이용 이유 중 하나로 꼽았는가”를 물었다.

숫자를 깎아내리려는 게 아니다. 전체의 23%도 결코 작은 수가 아니다. 다만 인용하려면 정확하게 인용해야 한다. 아이에게 “AI 말을 그대로 믿지 말고 확인해보자”고 가르치려는 부모라면, 우리부터 숫자를 확인하고 써야 하지 않겠는가.

이게 이 사이트가 하려는 일이다. 불안을 키우는 숫자가 아니라, 정확한 숫자로 생각하는 것.

나는 이 통계를 이미 겪었다

통계가 나오기 훨씬 전, 나는 우리 집 거실에서 이 숫자를 먼저 만났다.

토요일 오후였다. 아이는 소파에서 태블릿을 보고 있었고, 나는 그 옆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그때 아이가 고개를 들고 물었다.

“아빠는 ChatGPT 써봤어?”

“음… 써본 적은 있는데, 자주 쓰진 않아.” 어색하게 떨리는 내 목소리에 아이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친구들은 맨날 써. 숙제도, 이야기 만들기도, 심지어 궁금한 거 물어보는 것도. 뭐든지 다 알고 친절하게 설명해줘. 그리고…”

아이가 잠깐 멈췄다가 말했다.

“아빠보다 더 많이 알아.”

아이는 별 뜻 없이 던진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날 밤, 잠든 아이 방 앞에 서서 나는 처음으로 그 두려움을 마주했다. ‘혹시 나는 쓸모없는 아빠가 되어가는 걸까?’

몇 해 전만 해도 나는 아이에게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었다. “아빠, 하늘은 왜 파래?” “아빠, 개미는 어떻게 무거운 걸 들어?” 그 모든 질문의 종착지가 나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아이는 나에게 묻는 대신 휴대폰을 꺼냈다. 내 설명을 듣고는 “맞나 확인해봐야겠다”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나는 언제부터 ‘확인이 필요한 정보원’이 되어버린 걸까.

그리고 지금, 국가 통계가 그 장면을 숫자로 확인해줬다.

왜 아이는 AI에게 말할까

아이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유는 잔인할 만큼 명확하다.

AI는 화내지 않는다. 실망한 표정을 짓지 않는다. 성적이 떨어졌다고 말해도 한숨을 쉬지 않는다. 새벽 두 시에도 즉시 응답하고, 피곤하다고 대충 답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는 판단받지 않는다고 느낀다.

한 가지는 정확히 하자. AI가 판단을 안 하는 게 아니다. AI는 아이의 말을 해석하고, 어떤 표현은 강화하고 어떤 표현은 눌러가며 답을 만든다. 다만 그 과정에 화도 실망도 없어 보일 뿐이다. 게다가 AI는 사용자가 듣고 싶어 하는 쪽으로 지나치게 맞장구치기도 한다. 그건 이해가 아니라 동조다.

반면 아빠는 어떤가. 아이가 조심스럽게 고민을 꺼내면, 우리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말은 대개 이렇다.

  • “그러니까 진작 하라고 했잖아.”
  • “그건 이렇게 하면 돼.”
  • “그게 무슨 고민이야.”

아이가 원한 건 해결책이 아니었다. 그냥 들어주기였다. 그런데 우리는 듣는 대신 고쳐주려 한다. 사랑해서 그런다. 하지만 아이가 배우는 건 하나다. ‘아빠한테 말하면 잔소리가 돌아온다.’

다만 모든 침묵이 부모 탓은 아니다. 아이가 부모에게 말하지 않는 이유는 여러 겹이다. 독립하고 싶은 마음, 사생활을 지키고 싶은 마음, 또래에게 더 인정받고 싶은 시기, 부모를 걱정시키기 싫은 배려, 말로 옮기기 어려운 감정. 그리고 그냥 — AI가 더 빠르고 편해서이기도 하다.

그러니 자책만 하지는 말자. 다만 우리가 문을 조금 닫아둔 건 아닌지, 그건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아이 셋 중 한 명은 이미 마음을 털어놨다

여기까지가 2025년 통계다. 그런데 더 최근 조사가 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2026년 3월, 만 14세 이상 아동·청소년 3,300명을 조사한 이슈브리프 「내 친구와의 위험한 대화」다. 나는 이 보고서 원문도 직접 열어봤다.

  • 생성형 AI 챗봇 사용 경험 94.4%. 그중 19.3%는 거의 매일 쓴다.
  • 약 33%가 “힘들거나 우울할 때 AI 챗봇에 털어놓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 49.5%가 “AI가 나를 이해해준다고 느낀 적 있다”(항상 8.2% + 가끔 41.3%).
  • 35.1%가 “AI를 실제 사람처럼 느낀 적 있다”(자주 5.3% + 가끔 29.8%).
  • 23.9%는 AI에게 자신의 건강·정신 상태를 입력해봤다.

출처: 초록우산, 「생성형 AI 챗봇 안전설계를 위한 이슈브리프 — 내 친구와의 위험한 대화」(2026년 4월 발간). 조사기간 2026년 3월 9~23일, 전국 만 14세 이상 아동·청소년 3,300명.

앞서 본 문체부 조사에서 AI를 ‘상담 대상’으로 꼽은 아이는 7.3%였다. 이 조사에서는 33%가 “털어놓은 적 있다”고 답한다. 두 숫자는 모순이 아니다. 질문이 다르다. 하나는 “주로 누구와 상담하느냐”고 물었고, 다른 하나는 “한 번이라도 털어놓은 적 있느냐”고 물었다.

두 조사는 대상도 다릅니다. 문체부는 13~18세로 한정했고, 초록우산은 “만 14세 이상”으로 상한 연령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같은 아이들을 두 번 조사한 것이 아니므로, 두 수치를 더하거나 직접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방향은 읽힌다. 주된 상담 상대로 AI를 꼽는 아이는 아직 소수지만, 한 번이라도 AI에게 마음을 털어놔본 아이는 훨씬 많다. 아직 ‘내 상담 상대’라고 부르지 않을 뿐, 문은 이미 열려 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가 정확히 거기다.

AI가 할 수 없는 일은 ‘멈추는 것’이 아니라 ‘책임지는 것’이다

같은 보고서에 이런 수치가 있다.

자해·자살, 폭력, 성적인 내용 같은 위험한 질문을 AI에게 해본 아이가 약 6%다. 그리고 그중 약 52%가 AI로부터 답변을 받았다.

여기서 정확해야 합니다. 이 조사는 “답변을 받았는가”를 물었을 뿐, 그 답변이 위험한 내용이었는지까지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거절·경고·상담기관 안내도 ‘답변’에 포함됐을 수 있습니다. 이 숫자를 “AI가 아이에게 위험한 방법을 알려줬다”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도 이 숫자가 말해주는 건 분명하다. 아이들의 위험한 질문이 실제로 AI와의 대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대화를 아무도 모른다는 것.

오해를 하나 풀자. 요즘 주요 AI 서비스는 자해·자살 신호에 아무 대응도 안 하지 않는다. 위험한 안내를 거절하고, 상담 자원을 안내하도록 설계돼 있다. AI가 아무것도 못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AI가 끝내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AI는 그 판단이 매번 정확하다고 보장하지 못한다. 아이의 상태를 직접 확인하러 갈 수 없다. 다음 날 아침 아이의 얼굴을 살필 수 없다. 보호자나 전문가가 실제로 개입하도록 책임질 수 없다.

AI가 못 하는 건 멈춰 세우는 게 아니라 — 곁에 가는 것이다.

이런 신호가 보이면, 대화만으로 끝내지 마세요

여기까지 읽고 “잘 들어줘야겠다”고만 결론 내리면 이 글은 실패다. 들어주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은 순간이 분명히 있다.

전문가·기관의 도움이 필요한 신호

  • 죽고 싶다, 사라지고 싶다는 말을 한다.
  • 자해 방법·약물·극단적 식사 제한을 반복해서 찾아본다.
  • “AI만 나를 이해해준다”고 말하며 사람과의 접촉을 피한다.
  • AI와의 대화를 가족에게 숨기거나, 공개를 극도로 두려워한다.
  • 잠·식사·학교생활이 갑자기 무너진다.
  • AI의 조언을 이유로 치료나 약 복용을 거부한다.

즉각적인 위험이 느껴지면 아이를 혼자 두지 말고 112·119나 가까운 응급실에 도움을 요청하세요. 지속되는 우울·불안·자해 생각은 학교 상담교사나 정신건강 전문가와 연결해야 합니다. 청소년상담1388에서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모든 AI 챗봇이 같은 것도 아니다. 질문에 답하는 일반 AI와, 친구·연인처럼 애착을 맺도록 설계된 동반자형 챗봇은 위험의 결이 다르다. 정서적 의존은 후자에서 훨씬 직접적으로 생긴다. *“아이가 AI를 쓰는가”*보다 “어떤 서비스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먼저 봐야 하는 이유다.

개인정보도 짚어야 한다. 앞서 23.9%의 아이가 자신의 건강·정신 상태를 AI에 입력했다고 했다. 아이에게 미리 알려주자 — 이름·학교·주소·연락처는 넣지 않는다. 친구의 실명이나 대화 캡처도 올리지 않는다. 챗봇 대화는 상담실의 비밀 상담과 같은 보호를 받지 않는다.

그런데 AI가 하지 못하는 일이 있다

내가 이 사실을 알게 된 건, 통계가 아니라 아이의 한마디를 통해서였다.

며칠 전, 아이가 친구들과 갈등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친구가 자기 비밀을 다른 아이들에게 말했다는 것이다.

“아빠, 어떻게 해야 해요?”

예전의 나였다면 곧장 해결책을 내놨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은 다르게 물었다.

“그때 네 기분이 어땠어?”

“화가 나면서도 슬펐어. 믿었는데…”

“그런 기분 들 만해. 아빠도 그런 경험 있어.”

우리는 한 시간 넘게 이야기했다. 해결책을 찾는 시간이 아니라, 아이의 마음을 듣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아이가 말했다.

“아빠, 이런 얘기는 GPT한테 할 수 없어요. 아빠니까 할 수 있는 거예요.”

그 말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영국의 심리학자 존 보울비는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안전 기지(secure base)‘라고 불렀다. 아이가 세상을 탐험하다 무섭거나 힘들 때 언제든 돌아와 위로받고, 다시 나갈 용기를 얻는 곳.

유튜브도, GPT도 아이를 넓은 세계로 데려가줄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 길을 잃었을 때 돌아올 기지가 되어주지는 못한다.

그 자리는 여전히 비어 있다.

다만 그 자리가 꼭 아빠여야 하는 건 아니다. 어떤 아이에게 부모는 안전한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안전 기지는 다른 보호자일 수도, 형제자매나 친척일 수도, 교사나 상담 선생님일 수도, 전문가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게 누구냐가 아니라, 위기의 순간에 실제로 곁에 와서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고 책임을 지는 사람이 있느냐다.

부모가 그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가장 좋다.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다른 어른과 전문기관으로 연결해주는 것까지가 부모의 몫이다.

권위는 사라진 게 아니라 모양을 바꿨다

한동안 나는 잃어버린 권위를 되찾으려 애썼다. 아이보다 더 많이 알려고 뉴스를 뒤졌고, “그래도 아빠는 실제로 경험해봤어”라며 경험을 내세웠고, 끝내는 “그래도 아빠 말은 들어야지”라는 카드까지 꺼냈다.

전부 실패했다. 아이는 더 반발했고, 우리 사이엔 벽이 생겼다.

그러다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이 나눈 두 가지 권위를 알게 됐다. 비합리적 권위는 힘과 지위에서 온다. “내가 부모니까”, “내가 나이가 많으니까.” 반론을 허용하지 않는다. 반면 합리적 권위는 지식과 경험에 기반하되, 질문과 토론을 허용한다. “내가 아는 것을 네 성장을 위해 나누겠다”는 자세다.

내가 그동안 붙들고 있던 건 전자의 껍데기였다. 정보 격차라는 이름의 우위. 그리고 그 우위는 스마트폰 하나에 무너졌다. 무너지는 게 당연했다.

아이에게 배운 새로운 권위의 정의는 이렇다.

  • 권위는 ‘지배하는 힘’이 아니라 ‘신뢰받는 힘’이다.
  • 권위는 ‘모든 걸 아는 것’이 아니라 ‘함께 배우려는 마음’이다.
  • 권위는 ‘틀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틀려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이다.

요즘 아이는 GPT에게 답을 물어본 뒤에도 나에게 온다.

“아빠, GPT는 이렇게 말하는데, 아빠는 어떻게 생각해요?”

정보의 독점이 아니라 생각의 나눔. 이게 새로운 권위의 모습이었다.

오늘 밤부터 할 수 있는 세 가지

거창한 계획은 필요 없다. 나를 다시 아이 곁에 세운 건 세 문장이었다.

1. 조언을 멈추고 질문을 건네라. “그때 네 기분이 어땠어?” 해결책은 그 다음이다. 대개 그 다음은 필요하지도 않다.

2. 모른다고 말하라. “아빠도 잘 몰라. 같이 알아보자.” 이건 권위의 상실이 아니라 회복이다. 아이는 완벽한 부모가 아니라 같이 배우는 부모를 더 신뢰한다.

3. 끝까지 들어라. 판단하지 않고 끝까지 들은 경험 한 번이 모든 걸 바꾸지는 않는다. 그동안 쌓인 것이 있다면 아이는 쉽게 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 한 번이 아이가 다시 찾아올 수 있는 첫 경험은 된다. 그 경험이 반복될 때 신뢰가 쌓인다.

AI가 가진 무기는 ‘판단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 무기는 당신도 쓸 수 있다. 그리고 당신에게는 AI에게 없는 것이 하나 더 있다 — 다음 날 아침, 아이의 얼굴을 살필 수 있다는 것.


통계는 아이가 AI에게 가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더 많은 아이가 아무 데도 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니 부모의 역할은 AI보다 더 잘 대답하는 것이 아니다. 위험을 알아차리고, 실제로 곁에 가고, 필요할 때 다른 사람과 전문기관으로 연결하는 것. 그건 AI가 할 수 없다.

내 아이는 그날 이렇게 말했다.

“아빠, 이런 얘기는 GPT한테 할 수 없어요. 아빠니까 할 수 있는 거예요.”

모든 아이가 이렇게 말해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그 자리를 비워두지 않아야 한다.

AI는 답을 준다. 하지만 마음을 끝까지 지켜주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이 글이 사용한 자료

  • 문화체육관광부, 「2025년 한국인의 의식 및 가치관 조사 결과보고서」(2025년 12월 발표). 실사 2025년 8월 15일10월 2일, 전체 6,180명 중 1318세 390명. — 고민 상담 대상 통계 [표 4-9]
  • 한국언론진흥재단, 「2025 10대 청소년 미디어 이용조사」. 초등 4학년~고3 2,674명. — AI 이용률 67.6%, 이용 이유(복수응답) 34.4%
  • 초록우산, 「생성형 AI 챗봇 안전설계를 위한 이슈브리프 — 내 친구와의 위험한 대화」(2026년 4월). 조사 2026년 3월 9~23일, 만 14세 이상 3,300명.
  • John Bowlby, A Secure Base(1988) — 안전 기지 개념
  • Erich Fromm, 『자유로부터의 도피』 등 — 합리적 권위 / 비합리적 권위 구분

모든 통계는 원 보고서 원문을 직접 확인해 인용했습니다. 언론 보도의 재인용 수치는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이 글은 thinkwith의 자체 조사·집계로 작성되었습니다. 출처: 아이가 부모 대신 AI에게 고민을 말할 때 — 막아야 할까, 어떻게 봐야 할까 — thinkwith

자주 묻는 질문

아이들이 정말 부모보다 AI에게 고민을 상담하나요?

문화체육관광부 「2025년 한국인의 의식 및 가치관 조사」(2025년 12월 발표)에서 13~18세 청소년이 고민 상담 대상으로 꼽은 비율은 친구 27.0%, 어머니 26.2%, 상담하지 않음 15.6%, AI 7.3%, 아버지 6.5% 순이었습니다. AI가 아버지보다 근소하게 높지만 차이는 0.8%포인트에 불과하고 해당 연령 표본이 390명이므로, 순위 자체보다는 AI가 상담 대상 목록에 올라왔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아이가 AI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것을 막아야 하나요?

무조건적인 금지나 몰래 감시부터 시작하면 대화가 더 숨겨질 수 있습니다. 먼저 어떤 서비스에서 무슨 목적으로 쓰는지 함께 확인하세요. 다만 다음 신호가 보이면 사용을 제한하고 보호자나 전문가가 즉시 개입해야 합니다. 자해·자살·섭식장애·성적인 대화가 반복되는 경우, "AI만 나를 이해해준다"며 사람과의 접촉을 피하는 경우, AI 조언을 이유로 치료나 약 복용을 거부하는 경우, 잠·식사·학교생활이 무너지는 경우입니다. 즉각적인 위험이 느껴지면 아이를 혼자 두지 말고 112·119나 응급실에 도움을 요청하세요. 청소년상담1388에서 24시간 상담이 가능합니다.

AI에게 말하고 있으면 그래도 안전한 건가요?

아닙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 아이도 걱정해야 하지만, AI에게 말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안전하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무엇을 말하는지, AI만 찾게 되는지, 위험 신호가 있는지를 함께 봐야 합니다. 특히 위험한 마음을 사람에게 연결하지 못한 채 AI 안에서만 반복하는 상태가 가장 위험합니다. 또 질문에 답하는 일반 AI와, 친구·연인처럼 애착을 형성하도록 설계된 동반자형 챗봇은 위험의 성격이 다릅니다. "AI를 쓰는가"보다 "어떤 서비스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먼저 확인하세요.

왜 아이는 아빠에게 고민을 말하지 않을까요?

많은 경우 아빠가 무관심해서가 아니라, 아이가 말을 꺼냈을 때 돌아오는 반응이 조언·평가·해결책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해결책보다 먼저 들어주기를 원합니다. "그때 네 기분이 어땠어?"라는 질문 하나가 "그러니까 이렇게 해"라는 조언 열 개보다 아이를 더 열게 합니다.

AI 상담은 아이에게 위험한가요?

초록우산의 2026년 3월 조사(만 14세 이상 3,300명)에서 자해·자살·폭력 등 위험한 질문을 해본 아이가 약 6%였고, 그중 약 52%가 AI로부터 답변을 받았습니다. 다만 이 조사는 "답변을 받았는가"만 물었기 때문에, 거절이나 상담기관 안내도 답변에 포함됐을 수 있습니다. 이 수치를 "AI가 위험한 방법을 알려줬다"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요즘 주요 AI는 위험 신호에 대응하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그러나 그 판단이 매번 정확하다고 보장할 수 없고, 무엇보다 AI는 아이의 상태를 직접 확인하러 가거나 보호자·전문가가 실제로 개입하도록 책임질 수 없습니다. AI가 못 하는 것은 멈춰 세우는 일이 아니라 곁에 가는 일입니다.

실제로 아이들은 얼마나 AI에게 마음을 털어놓나요?

초록우산 「내 친구와의 위험한 대화」(2026년 4월 발간, 2026년 3월 조사, 만 14세 이상 3,300명)에 따르면 AI 챗봇 사용 경험은 94.4%이고, 약 33%가 "힘들거나 우울할 때 AI 챗봇에 털어놓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또 49.5%는 "AI가 나를 이해해준다고 느낀 적 있다", 35.1%는 "AI를 실제 사람처럼 느낀 적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통계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숫자는 무엇인가요?

AI 7.3%가 아니라 "아무에게도 상담하지 않는다" 15.6%입니다. AI에게 말하는 아이보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 아이가 두 배 많습니다. 진짜 문제는 아이가 AI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어디에도 말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이와 대화를 다시 시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조언을 멈추고 질문을 건네는 것부터 시작하세요. "왜 그렇게 생각했어?", "그때 기분이 어땠어?", "아빠는 잘 모르겠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 해결하려 들지 말고 끝까지 듣는 것이 먼저입니다. 다만 한 번의 경청이 모든 것을 바꾸지는 않습니다. 그동안 쌓인 것이 있다면 아이는 쉽게 오지 않습니다. 그 한 번은 아이가 다시 찾아올 수 있는 첫 경험이 되고, 그 경험이 반복될 때 신뢰가 쌓입니다.

AI 시대에 부모의 권위는 사라진 건가요?

사라진 것이 아니라 모양이 바뀐 것입니다. 정보의 우위에서 나오던 권위는 스마트폰 하나에 무너졌습니다. 하지만 권위는 "틀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틀려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에서 다시 세워집니다. 아는 것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있느냐가 새로운 권위의 기반입니다.